은총의 소중함 오늘 창세기 말씀은 인간이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는데 에사오와 야곱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장자권'은 오직 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권리입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뭐라고 합니까? "이렇게 에사오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에사오에게 장자권은 태어나면서 자동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에사오와 야곱의 차이는 이를 귀하게 여긴 것과 그렇지 않은 차이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성인이라면 본인의 의지와 결정으로 그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습니다. 에사오는 '장자권'을 경히 여겼습니다. 이는 그가 하느님의 은총을 경히 여겼다는 뜻입니다. 실낙원 당한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의 말씀을 경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가볍게 여긴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자신들에게 관대하고 하느님..
멍에와 함께 쉼으로 초대 결혼을 준비하는 이는 축하객으로 누구를 초대할 것인지 정합니다. 요즘 초대장을 전달하는 방식도 ‘코로나 19’ 이전과 이후가 다릅니다. 언제부터인가 모바일로 받은 초대장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근사한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신랑 신부를 축하하는 자리에 초대된 이들은 즐거움을 만끽합니다. 하지만, 신랑 신부와 함께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멍에를 메고 자기희생을 요구하는 초대장이라면 그 초대에 선뜻 공감하거나 축하 자리에 가야 하는 고민을 하는 이가 많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우리의 아버지’로 소개하며 우리를 그분에게로 초대합니다. 초대장은 당신이 계획한 일을 하자고 우리에게 권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일, 용서하는 일, 치유하는 일’로 온유와 겸손이 마음..
당신의 뜻을 따르게 하소서 주님, 제게서 자신에 대한 잘못된 사랑으로 인해 제가 마음속에 생각하는 것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당신의 영광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저의 고통과 세상 적인 것들 때문에 슬퍼하는 태도를 거두어가소서. 대신 제 안에 당신의 마음과 일치하는 슬픔이 있게 하시옵소서. 제가 당하는 고통으로 인해 당신의 분노가 가라앉기를 기도합니다. 제가 당하는 고통이 제가 구원받고, 변화되는 도구가 되기를 원합니다. 지금부터는 제가 당신을 위해, 당신과 함께 그리고 당신 안에서 건강과 생명을 수용하고, 누리기 위한 목적에서만 그것들을 원하게 하옵소서. 제가 당신께 구하는 것은 건강이나, 질병, 생명이나 혹은 죽음이 아닙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당신께서 저의 건강이나 질병, 그리고 저의 생명이나 죽음을..
두려움을 넘어서는 신앙으로 “양들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처럼”(마태 10:16) 파견된 제자들이 당해야만 할 박해가 있을 것을 예고합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높을 수 없고, 종이 주인보다 더 높을 수 없다. 제자가 스승만해지고 종이 주인만해지면 그것으로 넉넉하다. 집주인을 가리켜 베엘제불(악마의 괴수)이라고 부른 사람들이 그 집 식구들에게야 무슨 욕인들 못 하겠느냐?”(마태 10:24-25) 하시며.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으로 취급을 받으신 것처럼 예수님으로부터 파견을 받은 이들도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파견하는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26,28,31)라는 말을 세 번 반복하면서 강조하시는데, 이는 박해하려는 온갖 시도에 맞서는 두려움, 육신을 잃을까 하는..
교회다움을 세워가기를 예수님의 사역은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치고, 그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포하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목자 없는 양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며 예수님은 추수할 일꾼들을 필요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 말씀하시고는 제자들에게 악령을 제어하는 능력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고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제자들에게 부여하시고 당신의 사역을 행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추수할 일꾼으로서 교회에게 부여된 능력이고 사명입니다. 교회는 모든 이들이 건강한 삶을 살도록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부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생명 사역의 전제가 되는 ‘가까이 온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