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있느냐? 우리는 1월 6일인 공현대축일을 오늘로 옮겨 지킵니다. 공현대축일은 주현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영어로는 ‘epiphany’로 표기하며 고대 그리스어의 ‘신의 현현(顯現)’에 해당하는 의미에 그 어원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이시며, 이 땅의 왕이심을 온 세상에 알리고 드러내신 것을 기억하며 기뻐하는 날입니다. 서방교회의 전통에서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동방박사 3인에게 경배를 받으신 사건을, 동방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하느님의 음성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다.’라는 증언이 공현대축일의 의미라고 합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성공회도 서방교회의 전통을 함께하고 있기에 오늘 복음도 동방박사의 방문 내용입니다. 동방박사..
율법학자들은 당시 유다 사회를 이끌었던 주류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서도 뛰어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법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생활수칙을 만들고 꼼꼼하게 다듬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율법학자들을 귀하게 여겼을 것이고, 이들이 특별한 권위와 힘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상식적이며, 품격 있고, 존경받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들을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길다란 예복을 걸치고 나다니며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회당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찾으며 잔칫집에 가면 제일 윗자리에 앉으려 한다. 또한 과부들의 가산을 등쳐먹으면서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는 오래한다.” 왜? 율법학자들..
우리에게 “본다.”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본다.’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외부에서 빛이 굴절되고 시신경에 전달되고 뇌로 전달, 정보가 처리되어 시각정보를 받아들여 대응하는 모든 상태를 말하는 것이 ‘본다.’라는 말의 첫 뜻입니다. 그 뿐일까요? 우리는 ‘책을 본다.’라고 말하면 그 책에서 정보와 지식 그리고 누군가의 경험을 배우기도 합니다. 또 ‘시험을 본다.’는 말은 내가 배우고 익힌 것을 응용하여 답을 내는 과정으로 이 기회를 통해 우리는 한 단계 더 성숙 합니다. ‘다음에 우리 한 번 보자.’는 약속을 하고 그 사람과 만나 삶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근황을 이야기하며 교류하기도 합니다.‘내가 보기에는’이라고 말하며 나의 관점 즉 내 주장과 생각은 어떤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결..
하느님의 나라 완성을 위한 공동참여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갈릴래아에서 선포하신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입니다. 오늘 복음도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력의 비유로 성장 속에 조화를 이루는 하느님 나라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풍성한 나무는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얻어 생명의 신비를 품습니다. 그 신비는 성장과 조화 속에 시간의 주인이 관여함으로 저절로 드러납니다. “저절로 자라나는 씨 비유”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초대받은 우리가 그분의 시간 안에 있음을 밝힙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의 본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가르치셨고,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셨고, 억울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느님 나라는 계속되고 있는데, 창조 질서 안..
오늘 복음을 보면 군중을 이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며 적대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적대적인 사람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그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예수님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걱정되어 예수님을 찾아 왔는데 군중들로 인해 직접 만나지 못하고 집 밖에서 예수님을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 상황을 전하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많은 기독교 성직자들은 이 말을 예수님의 입장에서 어..
본래 아버지의 사람들 부활 후 예수님은 제자들을 모아두시고 당신을 보낸 이가 누구이며, 제자들 역시 그분이 보내주셨다는 점을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느님 아버지가 보낸 사람들이며, 그분 안에 사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실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는 것에 관해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그러면서 제자들 모두가 진리를 위해 몸을 바치는 사람들이며, 그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에게로 돌아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천년이 넘는 시간을 지켜왔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보내신 아버지처럼 예수님이 제자들을 그리고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데 있습니다. 부활의 시간에 우리는 세상 속으로 ..
정치는 이미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국민들에게 어떤 이미지로 각인되느냐에 따라서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 비전과 방향이 선택되거나 거절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5공화국의 엄혹한 군부 통치 이미지를 벗어내기 위해서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씨는 자신이 보통사람임을 강조하며 자신의 정부는 보통사람을 위한 정부라고 강변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정치가 이미지라고 해도 이전의 삶의 자취와 실제 드러나는 삶의 모습이 일치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드러나고 마는 거짓말에 불과합니다. 이미지는 실제를 반영하는 명징한 설명일 수도 있고, 본 모습을 감춘 가장된 치장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를 ‘착한 목자’라고 밝힙니다. 그가 착한 목자인 결정적인 이유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 때문입니다. 삯꾼은 양들을 버리고 제 목..
다시 (復,부)! ‘다시!’ 나름대로 애써서 결과물을 제출했는데, 퇴짜를 맞을 때 듣던 말이 ‘다시!’ 였습니다. 우리 삶에는 이런 의미의 다시를 싫어도 피할 수 없습니다. ‘다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도 통과하지 못했는데, 기회가 다시 찾아 올 때 듣던 말이 ‘다시!’였습니다. 우리는 이럴 때, 눈물이 핑 돌며 재기를 시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온 인류를 향한 하느님의 ‘다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을 향한 하느님의 ‘다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에 대한 하느님의 ‘다시’입니다. “예수는 다시 살아나셨고 여기에는 계시지 않는다.”(마르16:6) 부활(復活)은 ‘다시 일으켜짐’, ‘다시 세워짐’입니다. 알고 보면 재기(再起)는 부활의 살아있는 의미를..
병자에게 필요한 복음 다양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은 영, 혼, 육의 건강이 무엇보다 소중함을 안다. 육신의 고통을 다양한 방법으로 해결하는 길이 있다. 재정 형편에 따라 시대, 지식과 고통의 강도에 따라 처방의 선택의 길이 다르다. 기도(금식), 음식(자연요법), 운동, 약국(약), 병원(수술), 교회(원로), 필자도 모든 것을 해봤다. 살아 있음에 감사하고 있다. 관리를 못해 지금은 풍치에 시달리지만 치아를 끝까지 사용하다 뽑는다. 스스로 뽑은 치아(8개)를 누구보다 많이 갖고 있다. 병원에서는 주지 않는다. 집에서 스스로 뽑아 갖고 있다. 치통에는 일가견이 있다. 고통을 어느 정도 즐길 줄 아는데, 이젠 여러 육체적 고통은 싫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으로 잘 해결하며 살아간다. 오늘 말씀에는 예수님 자신..
예수님의 권위와 우리들의 영적 자세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세상의 기존 질서를 인정하시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간의 금식기도 중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영성과 내공이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타성과 갑질에 사로잡힌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1고린4:20)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이 스스로 항복하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낼 때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악령을 쫒아 내십니다. 이 현장을 목격한 군중들은 권위 있는 새 교훈에 놀라며 소문은 근방에 퍼져 예수님의 복음이 확산됩니다..
예수의 길을 가는 제자 요한이 자기 몫을 다했다. 하늘이 내려준 몫을 다하고 옥에 갇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했다. 그 옛날 예언자 이사야의 소리가, 바벨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리는 기쁜 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 복음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꾸어 아주 달라지게 한다. 제자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다.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시니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또 부르시니 그들은 아버지와 배를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