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만 얻을 수 있는 것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은 겉으로 보기에는 다양해 보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재물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행복한지 아닌지 갈립니다. 우리는 높은 지위, 학력, 명예, 좋은 생활환경 등을 원합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다 돈으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은 많은 것을 돈을 주고 사고 팔 수 있습니다. 한 때 유행했던 가요 가사에 ‘뭐니뭐니해도 머니’라는 말은 여전히 오늘 우리 삶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돈을 벌고, 재물을 쌓기 위해서 많은 것을 포기합니다. 누구는 꿈을 포기하고, 누구는 소소한 일상을 포기하고, 누구는 가정을 포기하고, 또 누군가는 인간성마저 포기하기도 합니다. 약 2천 년 전 예수께서 하느님 나라를 전파하실 때..
하느님의 나라 완성을 위한 공동참여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갈릴래아에서 선포하신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입니다. 오늘 복음도 씨앗이 품고 있는 생명력의 비유로 성장 속에 조화를 이루는 하느님 나라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풍성한 나무는 뿌리로부터 자양분을 얻어 생명의 신비를 품습니다. 그 신비는 성장과 조화 속에 시간의 주인이 관여함으로 저절로 드러납니다. “저절로 자라나는 씨 비유”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초대받은 우리가 그분의 시간 안에 있음을 밝힙니다. 먼저, 하느님 나라의 본을 보여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어떤 곳인지 가르치셨고,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셨고, 억울한 이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느님 나라는 계속되고 있는데, 창조 질서 안..
오늘 복음을 보면 군중을 이룰 만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스승으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미친 사람으로 여기며 적대적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그리고 적대적인 사람들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그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예수님을 걱정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걱정되어 예수님을 찾아 왔는데 군중들로 인해 직접 만나지 못하고 집 밖에서 예수님을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께 이 상황을 전하자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말이 어떻게 들리시나요? 많은 기독교 성직자들은 이 말을 예수님의 입장에서 어..
예수님의 권위와 우리들의 영적 자세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세상의 기존 질서를 인정하시고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간의 금식기도 중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영성과 내공이 충만하신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타성과 갑질에 사로잡힌 율법학자들과 달리 권위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다.”(1고린4:20)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말씀을 선포하실 때 더러운 악령 들린 사람이 스스로 항복하면서 자기 정체를 드러낼 때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악령을 쫒아 내십니다. 이 현장을 목격한 군중들은 권위 있는 새 교훈에 놀라며 소문은 근방에 퍼져 예수님의 복음이 확산됩니다..
예수의 길을 가는 제자 요한이 자기 몫을 다했다. 하늘이 내려준 몫을 다하고 옥에 갇힌 후에 예수께서 갈릴래아에 오셔서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했다. 그 옛날 예언자 이사야의 소리가, 바벨론 포로들에게 해방을 알리는 기쁜 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가난한 사람이 복음을 듣는다. 소경이 보게 되고 절름발이가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고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 복음은 세상을 변화시키고 사회를 바꾸어 아주 달라지게 한다. 제자들이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다. 예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하시니 그들은 곧 그물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또 부르시니 그들은 아버지와 배를 남겨두고..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 이성호요한사제(주교좌교회)
2020.10.08
“하늘나라는 어느 임금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베푼 것에 비길 수 있다” 혼인잔치는 하느님나라의 비유 내용 중에서 구원을 의미하는 종말론적 심판을 나타냅니다. 살다보면 평가와 심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나를 발견합니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나 친지의 눈을 의식하기도 하고 평가를 통해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권력자의 시선도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합니다. 혼인잔치는 즐겁고 흥겨운, 말 그대로 누구나 초청받고 싶고 참여하고 싶은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의 비유의 내용은 예상외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초청하러 온 종을 죽이기도 합니다. 임금은 거리에 있는 자격 없는 자들을 닥치는 대로 청하되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할 것 없이 데려오라고 합니다. 하느님나라로 비유되는 혼인잔치가 이처럼 수준이 떨어지는 도떼기..
저는 요즈음 동트는 무렵 아침 달리기를 합니다. 참으로 몸과 마음이 상쾌합니다. 몸이 달리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이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는 동안 내 안의 집착을 밖으로 내쉬고 동시에 주님의 가치를 새로 들이마시며 하느님 나라를 향해 달리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포도원 주인은 소작인들에게 도지를 주고 멀리 떠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작인들은 멀리 있는 주인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착각합니다. 그 착각을 현실로 인식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약속한 도조를 안 주려고 급기야 살인까지 저질러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일을 하게 해준 포도원의 원래 주인은 이제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되고, 도리어 주인행세를 하는 모습입니다. 예수가 2000년 전 이 비유를 할 당시, 대사제들..
우리는 새 계약 공동체의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하느님 아들로 믿는 사람들, 예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이를 교회라고 합니다. 복음서 말씀은 교회 공동체의 사람들을 향해 말합니다. 교회 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에 대해 말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에 대해 명시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권면하고, 듣지 않으면 두 세 사람이 함께 가서 말하고, 그것도 듣지 않으면 교회차원에 권면하지만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며 출교시키고 접촉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구약의 신명기19:16~20 에도 비슷한 말씀이 있습니다. 18절에서는 교회에서 적절한 절차를 밟아 교인을 받아들이거나 출교시키는 것을 하늘에서도 그대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시작되는 하느님 나라의 현장입니..
주님은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모든 사람은 나에게로 오라" 하시며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내 멍에를 매고 나에게서 배우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 믿음을 칭찬하셨던 사람은 자기 의지를 가지고 뭔가를 할 수 있는 "소년"이 아니라, 부모의 도움이 아니면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갓난아기" 였습니다. 우리는 온유하고 겸손하시며 완전하신 주님께 내 짐과 멍애를 의탁하고 그분을 신뢰할때 평안과 안식을 얻습니다. 오늘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께 내 짐과 멍애를 의탁하며 홀가분하게 살아갑니다. 이번주일은 유용숙 프란시스 수녀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서대구교회 김민식 부제님께서 감사성찬례를 집전해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