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갚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웬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루가 6:27-38, 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5.02.21
원수 갚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웬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 루가 6:27-38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다.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라,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 주어라”는 높은 차원의 이웃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하느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겨내고 승리하는데 그 길은 믿음에 있다. (1요한5:3-5). 구세주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로 오셔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믿음의 자녀에게 근본을 새롭게 해주셨고, 성령의 도움으로(2디모1:7) 숭고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죄와 허물이 용서받았다는 인식이 회개와 믿음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의 격으로 긍휼히 여..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 12:28-34, 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4.11.02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12:28-34) 사랑의 계명에 공감력이 대단하고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 학자를 보시고 예수님은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서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사랑의 삶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늘나라의 삶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삶이다. 지식으로 단지 마음의 동조로 끝나는 믿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낙오자 삶에 불과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신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
최선을 추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 – 마르 10:2-16 우리는 종종 '적당히 하자'는 말을 사용합니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차선책을 선택하는 것으로 만족하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이혼 문제가 이러한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 사회에서 이혼은 주로 여성에게 불리했습니다. 여성들은 경제활동에 제약이 많았고, 이혼한 여성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삶이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종교적 권위에 기대어 이혼장을 요청했습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가 이혼장을 써 주고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이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한 몸으로 창조하셨기에 사람이 나누어서는 안 된다." 오늘날 교회..
사람을 섬기는 사람 - 마르 9:30-37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하였느냐?” 물으십니다.사실 이러한 논쟁은 제자들이 예수님과 지내던 내내 각자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던 유혹이며 욕망에서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감추며 은근히 경쟁하고, 겉으로는 진정한 형제애를 사는 척한 결과입니다.첫 자리, 높은 자리와 영향력, 주도권을 쥐는 자리인 “가장 큰 사람”에 집착하고 있을 때, 주님은 다가올 십자가를 말씀하셨습니다. 선생은 ‘고난받는 종’으로서 자기 생명을 내어줄 것을 생각하고 있을 때, 제자들은 스스로 스승이 되거나 높은 사람이 될 것만을 생각합니다. 선생은 섬김을 말하고, 제자들은 지배와 통치를 생각합니다.인간은 본성적으로 “큰 사람”이..
떠난 이의 뒷모습엔 이름이라는 사랑이 - 요한 17:6-19, 김대식 토마스아퀴나스 사제(서대구교회)
2024.05.10
떠난 이의 뒷모습엔 이름이라는 사랑이 - 요한 17:6-19 “참외를 먹다 벌레 먹은/ 안쪽을 물었습니다./ (…) 참회라는 말을 꿀꺽 삼키다가/ 내게 뒷모습을 보여주는 것/ 먼 사람의 뒷모습은/ 눈을 자꾸만 감게 하는지/ 나를 완벽히 도려내는지/ 사랑에도 뒷면이 있다면/ 뒷문을 열고 들어가 묻고 싶었습니다./ (…) 익을수록 속이 빈 그것이/ 입가에 끈적일 때/ 사랑이라 믿어도 되냐고/ 나는 참외 한입을/ 꽉 베어 물었습니다” (정현우, “사랑의 뒷면”, 나는 천사에게 말을 배웠지, 창비, 2021). 신앙의 빈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이름입니다. 하느님의 이름이 맴돌아 이름이 주었던 실제의 말들이 생각나 말들이 퍼지고 그 말들이 입술을 통해서 흘러나옵니다. 뒷면의 문이 열려 말이 새어나와 신앙의 이..
삶으로 증거 하는 사랑 오늘 복음 속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시면서 구약의 십계명과 그에서 파생된 조항들을 해체하십니다. 이처럼 십계명의 내용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심으로 우리에게 완성된 율법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율법과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완성된 율법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구체적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너희는 남에게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마태 7:12)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계명 안에 사랑을 담으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분명 율법의 완성이며(로마 13:10 참조),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통해 몸소 율법의 완성을 보여..
만족이 되시는 하느님 오 하느님, 자기가 마음을 다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으며 매우 소중한 의미를 줄만큼 사랑할 수 있는 대단히 위대한 대상이 있는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저는 제가 당신을 슬프시게 하지 않거나, 저 자신을 파멸과 부끄러움에 이르게 하지 않고서는 세상을 결코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여전히 저에게 즐거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오 하느님, 당신께서 기뻐하시는 영혼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왜냐하면 그러한 영혼을 가진 자는 그가 죄를 범할 때나 선을 행할 때도 흔쾌히 당신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영혼의 소유자는 당신께서 영원히 존재하시며, 삶이나 죽음으로도 그가 사랑하는 대상과 절대 분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이 추구하..
마지막 때,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의 복음을 증언할 때 오늘 복음은 성전 파괴와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하고 계신다. 제자들의 입장에서 예루살렘의 성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말하였으나, 예수께서는 종교의 지도자들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이 하느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로 완전히 파괴될 미래를 보셨다. 그리하여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질 날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였다. 오늘 우리도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이 시대를 분별해야 한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체나 교회도 하느님 앞에 제대로 서있는지 분별해야 한다. 실상 이려니 하였으나 허상이로다! 모든 곳에서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자들이 미련하게 깨닫는 안타까움이 만연한 세태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화 중에 종말의 때에 징조에 대해 알기를 원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성서를 유심히 살펴보면 예수님을 따른 모든 사람이 제자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닌다고, 예수님 가까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답은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가 되지 못한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는커녕 여전히 세상의 질서와 기준에 맞춰서 적당히 타협하려는 마음이 우선이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자신의 생각과 고집이 뚜렷한 가운데 귀찮고 어려운 일은 적당한 선에서 피하고 외면했다는 의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진정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다시 한 번 더 아래의 조건을 숙고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첫째, 사랑의 우선순위가 하느..
부활 생명을 믿는 행복의 길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무서워서 문을 닫아걸고 숨어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평화를 기원하시고, 당신이 보내어진 것처럼 제자들도 보낸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을 주시고, 사죄의 권한을 부여하십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에게 당신의 몸을 만져보게 하시고 의심을 버리고 믿을 것을 요청하시며 보지 않고 믿는 이들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기자는 사람들이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밝힙니다. 부활, 평화, 파견, 성령, 용서, 믿음, 생명 등이 본문에 담긴 핵심어들입니다. 얼핏 보면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사건에 따라 나열된 듯 하지만, 이 모든 주제들은 하나의 사실에 집중합니다. 바로 예수..
사랑과 수난 악기를 손봐 달라며 내 작업실에 오는 첼리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는 그 표정이나 말투가 꼭 아이를 병원에 데려온 부모 같습니다. 사실 많은 연주자에게 이런 상황은 병원에 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며칠간 내 작업실에 악기를 맡기고 갈라치면 그들은 전신 마취에 동의하고 아이를 수술대에 눕힌 부모처럼 불안해하지요. 얼마 전에 한 첼리스트가 찾아왔습니다. 며칠 뒤에 중요한 솔로 연주를 해야 하는데 첼로의 A현이 완전히 막힌 소리가 난다며, 이런 상태로 솔로 연주를 할 수가 없다고 난감해했습니다. 음악가에게 악기는 거의 신체 일부나 마찬가지입니다. 첼로의 음이 변한 상태를 설명할 때, 그는 마치 자기 오른팔이 마비되거나 손가락이 아픈 것처럼 말합니다. 다르지 않습니다. 악기는 그의 일부입니다. 음악가는 ..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주로 병든 이들을 치유하고, 귀신들린 이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시며 많은 이들을 먹이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과연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것일까요? 예수님의 권능을 보여주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저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바로 ‘현재’ 내가 느끼는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시는 분임을 보이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의 구원과 행복이 기적 안에만 있는 것일까요? 비록 성경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기적을 통해 사람들을 고통에서 외로움에서 소외에서 해방시키고 자유롭게 하지만 복음사가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신기한 일들 자체가 아니라 구원과 행복이 예수님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도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