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 갚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웬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루가 6:27-38, 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5.02.21
원수 갚는 일은 하느님께 맡기고, 웬수를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 루가 6:27-38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라는 말씀이 전제되어 있다. “누가 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라,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마저 내어 주어라”는 높은 차원의 이웃 사랑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이다. 하느님의 자녀는 세상을 이겨내고 승리하는데 그 길은 믿음에 있다. (1요한5:3-5). 구세주 예수님이 하느님 아들로 오셔서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인하여 믿음의 자녀에게 근본을 새롭게 해주셨고, 성령의 도움으로(2디모1:7) 숭고한 하느님 사랑을 실천할 수 있게 마련해 주셨기 때문이다. 즉 자신이 예수님 십자가 보혈로 죄와 허물이 용서받았다는 인식이 회개와 믿음으로 전제되어야 한다. 이로써 인간의 격으로 긍휼히 여..
광야에서외치는이의소리–루가3:1-6 로마 황제 티베리오가 다스리고, 빌라도가 유대 총독이었을 때, 또 세 지방 영주인 헤로데, 필립보, 리사니아 다스리고 있었고, 안나스와 가야파가 대제사장이었을 때, 요한은 광야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트럼프가 아메리카의 대통령으로 선출되고,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시진핑이 중국을 지배하고, 일본이 핵오염수를 방류하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폭격하고, 아둔한 권력자가 계엄농단을 하는 이때에도, 수천 년 줄기차게 이어져 내려온 하느님 말씀은 우리 앞에 도착(Advent)합니다. 우리는 어려움이 겹겹이 둘러싼 현실 속에서 살아갑니다. 세련된 불평등과 합법적 차별을 교묘하게 제도화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그 현실에 기대어 호응하거나 아니면 저항하거..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 12:28-34, 이재탁 요한 사제(대구교회))
2024.11.02
혹, 당신도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계시는 분이 아니신지요?(마르12:28-34) 사랑의 계명에 공감력이 대단하고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 학자를 보시고 예수님은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 하셨다. 하느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거쳐서 성령을 통해서 누리는 사랑의 삶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하늘나라의 삶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리신 주님의 사랑을 믿고 실천하여 경험적으로 아는 삶이다. 지식으로 단지 마음의 동조로 끝나는 믿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는 낙오자 삶에 불과하다.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신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
그 때와 그 자리에 님이 있을 때 - 요한 1:47-51, 김대식 토마스아퀴나서 사제(서대구교회)
2024.09.28
그 때와 그 자리에 님이 있을 때 – 요한 1:47-51 물리적 세계에서는 한 측면을 알게 되면 그 계의 다른 측면의 지식을 배제하게 됩니다. 이것은 물리학자 닐스 보가 주장한 ‘상보성의 원리’라는 이론입니다. 이를 함석헌의 ‘임이 오신다’는 시와 더불어 오늘의 복음을 번안한다면, 님이 오신다고 서둘러 소지를 하고 님이 오신 곳과 님이 거처할/당도할 곳을 계속 생각하며 일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자리, 자기 자신의 맘, 자기 자신의 때에 대해서는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지금 자기 자신의 맘, 맘이 머물고 있는 지금의 때, 자리입니다. 나타나엘이 머물고 있었던 때, 그 자리를 알고 있었던/보고 있었던(εἶδόν) 것은 과거의 그 때 그 자리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 보았다는 것입니다. ..
거미 - 마르 6:14-29 덫을 놓고 산다살기 위해누구라도 걸리면가차없이 독침을 놓고줄로 칭칭감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다자연의 순리인지궁여지책인지목구멍이 포도청이라,잘 지은 집 하나 장만하고평생 감옥에 갇혔다아, 인생이여 주일 복음 본문은 세례자요한의 죽음의 상황을 들려준다. 예수님은 그를 향해 “사람이 낳은 이 중에 가장 큰 사람”이라 했던가…, 그러나 그의 죽음은 너무나 어이없는 너무나 가벼운 죽음이 되어 버렸다. 성서를 쓴 남자들은 헤로데의 죄를 덮으려고 한을 품은 여인, 헤로디아에게 죄를 전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술에 취한 헤로데는 헤로디아의 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약속을 하여 결국 자신의 덫에 걸려, 그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있던 세례 요한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
유일한 희망 – 마르 4:26-34 희망적인 소식을 듣기가 어려운 요즘입니다. 국내 정치와 안보 문제, 경제적 어려움, 세계 여기저기서 발생하고 있는 분쟁과 무력 충돌, 전 지구적으로 휘몰아치는 기후 위기로 인한 이상 징후가 연일 뉴스를 통해 전해집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천민자본주의의 득세로 부유함이 삶의 질을 보여주는 척도가 되고, 애초에 공정하지 못한 사회임에도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가난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실패자라고 깔보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쥐어짜 타인에게 ‘있어 보이는’ 삶을 전시하지만, 보여지는 것과 현실의 괴리를 견디지 못해 우울과 불행의 늪에 빠지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무너진 개인은 생존을 위해 ..
교회의 생일 - 요한 15:26-27, 16:4하-15 우리는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 그리고 부활되심과 하늘로 올리우심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을 따라 살기 위해 힘쓰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람 자체와 그들의 모임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교회는 이 땅에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주님의 손이며, 하느님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주님의 발입니다. 바울로가 말했듯 우리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예수님을 머리로 삼아 주님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직접 뵙고 따르며 가르침을 받던 작은 공동체의 신앙 운동이 이제는 약 2천년 긴 시간을 뛰어넘고 산과 바다를 넘어 세상에서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교회의 출발점은 언제일까요? 바로 성령님께서 임하..
부활 속의 공현 알렐루야! 우리교구 위에 부활의 환호성이 가득하길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실재, 현실성은 증인들의 눈앞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현현으로 입증되었습니다. 고린토교회에 사도 바울로가 전하는 가장 중요한 것 가운데 두 가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나타나심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부활과 함께 여러 사람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신 고린토전서 15장, 오늘 전례독서 본문에는 그렇기 때문에 ‘나타나셨다(보이셨다)’는 단어가 6번이나 반복해서 쓰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교리차원에서 믿는 것으로 대체될 수 없는 생생한 사건이며 실재입니다. 초대교회들, 고린토교회, 고르넬리오 가정교회에서 중요한 것,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
마음으로 맺음 - 예레 31:33-34 “내가 분명히 말해둔다. 그 마음에 내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언약의 기초이며 근거인 하느님의 법인 ‘율법’을 히브리어로 ‘레브’라고 읽습니다. 그 뜻은 ‘마음’입니다. 그러니까 하느님께서 언약의 관계를 체결하고 그들의 하느님이 되어주시기 위해 주셨던 ‘법’이란, 사실은 그들을 향한 절절한 당신의 ‘마음’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과 ‘계명’안에 담겨있는 핵심은 보지 못한 채, 자신들에게 부과된 지켜내야 할 의무나 무거운 짐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여전히 겉으로는 말씀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예배도 드렸고, 성전도 찾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말씀을 지키지 않았고 언약을 파기한 책임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뒤, 곧 나의 자리 – 마르 8:31-38 예수께서 당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 말씀 가운데 무엇에 집중하게 됩니까? 내 안의 무엇이 그 말씀으로 향하게 하는지 곰곰이 나를 들여다봅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항의하는 베드로에게 당신의 뒤로 물러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며 예수님의 뒤로 물러간다는 것이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옵니까? 천천히 깊게 호흡하며, 성령께서 사람의 일에 끌려다니는 나를 예수님의 ‘뒤’로 인도하여 주시길 기다려 봅니다. 다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그분의 뒤를 바라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길은 깊은 고독이 뒤따르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러나 피하고 싶은 이 길을 걸어 예수님의 뒤로 물러..
예수께서 물으셨다. 참 너는 자유하냐고 – 요한 1:43-51 전례적 교회가 지키고 있는 성서정과의 전통은 매우 소중하지만, 성서학적으로 모든 독서들이 하나의 주제를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독서를 읽는 신자의 마음이 더욱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신기하리만치 세 본문의 주제가 비슷합니다. 제1독서의 히브리 성서에서는 사무엘과 하느님의 첫 만남의 장면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소리를 들은 사무엘이 하느님의 소리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을 배려하시면서 계속해서 불러주시지요. 저는 이 장면이 매우 설렙니다. 마치 지극히 애틋한 사랑을 품고 서로를 찾아가는 연인의 손짓 같아 보입니다. 제2독서의 서신성서는 바울로 사도께서 그의 애증의 관계..
기다림 각성 - 마태 25:1-13 혼인잔치는 천국잔치와 같이 신랑되시는 예수님을 따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슬기로운 자는 신랑을 기다리면서 켜야 할 등불의 기름을 넉넉하게 준비합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는 등만 준비하고 기름을 준비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등이 아니라 기름입니다. 모두에게 불을 켤 수 있는 삶을 주시지만, 거기에는 함께 행해야 할 기름의 삶이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믿음이나 선한 행실을 말하고 가깝게는 긍휼을 베푸는 것으로 한마디로 사랑의 삶인 것 같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기대보다 신랑이 늦게 오면서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재림의 지연에는 잃은 자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하느님의 긍휼의 마음이 담겨져 있으나, ..